자기소개


자기 소개를 스스로에 대한 진술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나에 대한 사실보다 에두아르 르베소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책은 이런 식으로 쓰여졌다.

그의 방식대로 나의 소개를 해보자면,


"나는 물살을 잘 헤쳐 나간다. 나는 자주 할 말을 잃지만 듣기를 멈추지 않는다. 나는 장미꽃과 타르향이 나거나 청사과와 캐슈너트향이 나는 알콜을 좋아한다. 나는 아는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길 좋아한다. 나는 경제학을 전공했다면 더 좋았을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그건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라 알 수가 없다. 나는 사고보다 신체가 유연하다. 나는 분류를 좋아한다. 나는 말을 할 때 근데 라고 시작하고 문자를 쓸 때 아니 라고 시작할 때가 많다. 나는 옆자리가 비어있는 기차 타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욕조 안에서 쥐가 나오는 악몽을 종종 꾼다. 나는 짐보다 짐을 담을 컨테이너가 더 많다. 나는 관광객이 거의 없는 유적지 근처에 산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소개는 대체로 새로운 집단에 들어섰거나 들어서기 위해 해야하는데 요즘은 후자의 경우가 빈번하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입장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사태이다.

가장 최근에 한 자기 소개는 계간지에 칼럼을 기고하며 쓴 것으로 내용은 이러하다.


"자주 읽고 듣고 종종 쓰고 말한다. 도시 건축을 전공하다 위치변경 중이다. 기록과 전달과 편집의 곳곳을 경유하고 있다."

자기소개의 합이 나를 전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나에 대한 인상과 소개의 내용을 겹쳐보며 유사함과 차이에 대해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건축을 공부하다 그만두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일은 재미없었다.


이미 중력을 거스른 것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수집하고 배치하고 해석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이러한 흥미를 바탕으로 복수의 프로젝트를 스스럼 없이 했다.

그래서 건축을 뒤로 한 이후의 행방을 물으신다면,


나는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하며 지냈다 라고 답을 하거나,


( ____ )개인 사업자라고 답을 한다.

나를 거쳐간 역할들은 _______이다.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_____이며,
다시 하지 않을 일은 _____이고,
가장 잘 하고 싶은 일은 _____이다.


가장 지속해서 쓰는 도구는 글쓰기이다.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 지도와 교차하는 이웃>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이외에도 <리얼의 피부를 통과하는 건축>,
<목소리를 잃은 자들의 공동체, 부재의 아카이브>와 같은 리뷰를 썼고,


<보통의 안부를 비추는 화자들>, <한국음악의 재료를 해체하고 조합하기> 와 같은 인터뷰를 했다.

얼마간 그래왔고 당분간 역시 논문을 쓰며 지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주를 위해서다.


그렇지만 의뢰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자마자 내가 그렇지 않게 행동한 것들이 떠오르며 당황스러워지"기 때문에 자기소개를 어려워하는 친구의 말에 무척이나 동의한다.

그래서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고 쓰는 대신, 내가 어떤 장면을 경유해 왔는지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이런 곳을 이렇게

그리고 지금은 여기에.